일본엔터테인먼트의 큰 별이 지다. RIP Johnny

2019. 7. 10. 13:21일본 문화/뉴스・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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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처음 일본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여러분 개인개인 마다 다르겠지만 바로 일본 엔터테인먼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을까요?

지금이야 여러 사무실에서 많은 아이돌과 아티스트가 나오지만 

제가 처음 일본문화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쟈니스가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어제 저녁, NHK뉴스 속보로 이 쟈니스를 이끌어왔던 쟈니 사장님께서 지병으로 별세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 엔터테이먼트에서 큰 획을 긋고 한국엔터테인먼트에서도 길잡이를 해주었던, 바로 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쟈니스 사무소 설립까지

 

 

쟈니 키타가와는 은 1931년 10월 23일에 로스 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1960년대 초반 자신이 살고 있었던 도쿄 요요기의 점령 미국 숫ㄱ소 워싱턴 하이츠에서 이웃 소년 30명을 모아 소년 야구팀의 코치를 했습니다. 그 팀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 쟈니즈로 지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쟈니스의 시초라고 할 수 있지요. 이 후 이 팀의 멤버중 4명의 소년들을 선정해 영화관을 데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본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감동하여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4명의 소년으로 초대 쟈니스를 결정하게 됩니다.

또한 1962년 6월 쟈니스 사무소를 창업합니다. 처음에는 와타나베 프러덕션의 관리하에 운영되었지만 1975년 1월에 정정식으로 주식회사로서 법인 등기 하게 됩니다.

 

사무실의 초창기에는 소년대, 히카루겐지, 등이 활약하였고 1991년 SMAP 등장 이후 쟈니스 소속의 남성아이돌은 전성기를 맞이하여, 데뷔하는 아이돌 마다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2. 쟈니스 사무소가 만들어 낸 아이돌

 

쟈니스는 70년대 포리브즈(フォ一リ一ブス)와 고 히로미를 히트시키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 히로미는 노구치 고로, 사이조 히데키와 함께 '신 고산케(新御三家)'로 불리며 1970년대 남성 아이돌의 탑쓰리로 군림하게 되죠. 그러나 고 히로미는 쟈니스에서의 활동에 회의감을 느꼈고, 마침 바닝프로덕션으로부터 이적 제안이 들어오자 1975년에 주니어 멤버 6명을 데리고 이적해버립니다. 이후 쟈니스는 와타나베 프로덕션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연예 기획사로 독립, 이런저런 그룹과 솔로를 데뷔시키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70년대 중후반 내내 암흑기를 맞게됩니다.

 

1980년대 초반, 쟈니스는 타하라 토시히코, 콘도 마사히코, 노무라 요시오 등 소위 말하는 타노킨 트리오를 차례로 데뷔시키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특히 콘도 마사히코는 데뷔 싱글이 창립 이래 최초의 밀리언에 연간 3위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등 쟈니스의 암흑기를 끝낸 일등공신으로 쟈니스 역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이때문에 메리 부사장이 매우 아끼는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뒤이어 1985년에 소년대가 데뷔해서 히트하고, 1987년에 데뷔한 히카루GENJI는 사회현상으로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게됩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에 실력파를 자처하며 데뷔한 오토코구미, 닌자 등이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인 TBS의 '더 베스트텐', NTV의 '노래의 톱텐', 후지 TV의 '밤의 히트스튜디오'가 1990년까지 모두 폐지되면서, '아이돌의 빙하기'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아이돌 자체의 설자리가 크게 좁아져 제 2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SMAP이 '친근함'을 내세워 버라이어티에서 활약하면서 점차 인기를 얻었으며 현재의 쟈니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초중반, 5~10년 전후에 불과했던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크게 길어진 것도 SMAP이 기점이 되게 됩니다.

 

1993년에는 NHK-BS2에서 이제까지 선배 그룹의 백댄서 정도로만 알려졌던 쟈니스 주니어가 전면으로 나선 방송인 '아이돌 온 스테이지'가 시작되었으며, 1995년에서 1999년 전후는 이른바 '주니어 황금기'로서 주니어의 인기가 웬만한 데뷔조를 능가하였습니다.

또한 1995년 V6를 시작으로 4년마다 배구 월드컵 이미지 캐릭터, 소위 배구조로 새 그룹을 데뷔시키는 체제도 만들어졌습니다. 

 


 

3.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에 끼친 영향

 

 

간혹 쟈니스는 일본에서만 그 영향력과 팬덤이 많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한국 연예계에도 쟈니스가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음악적인 부분이라고 하기보다는 연예기획사 운영방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과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에도 알게 모르게 쟈니스 음악이 퍼져나갔습니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초반 콘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가 암암리에 인기를 끌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히카루GENJI가 등장,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었으며 이들에 관련된 팬사이트가 히카루겐지가 사실상 해체하고도 훨씬 시간이 지난 200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을 정도입니다.

 

또한 당시 당시 인기프로그램이었던 KBS <젊음의 행진>에서는 그들을 모방한 통크나이(야차) 라는 그룹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한국 음악사에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꼽히는 룰라의 천상유애 표절의 원곡도 쟈니스의 소속 아이돌 닌자의 데뷔곡 오마츠리 닌자입니다. 다만 이 시절에도 일본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던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산 사는 사람이나 일본 대중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메이저한 수준까지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쟈니스의 전성기가 오면서 한국 연예 기획사들도 쟈니스 시스템을 모방해서 댄스 그룹들을 데뷔시켰습니다. 대표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이수만이 쟈니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또한 대성기획 소속이었던 젝스키스는 데뷔 때부터 멤버들의 나이를 기준으로 이미지를 달리한 블랙키스, 화이트키스로 나뉘었는데, 훗날 멤버 이재진이 밝힌 바로는 V6의 컨셉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했었죠.

 

SM의 연습생 시스템인 SM Rookies 역시 쟈니스의 연습생 시스템인 쟈니스 주니어에서 따온 것이며. 그리고 이 회사 사장과 이름이 같은 아이돌을 데뷔시킨건 유명하죠?

 

쟈니스는 한국 가요계뿐 아니라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등 연예계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2000년대 중반 즈음부터 한국은 아이돌 멤버 출신이 자신의 그룹이 해체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배우로 입문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대 부터는 댄스와 노래만 하던 아이돌 가수가 영화와 드라마 주연까지 손쉽게 따내는 경우가 상당히 늘었는데 실제로 이는 쟈니스가 회사 권력을 이용해 자사 아이돌 멤버가 영화와 드라마 캐스팅에까지 우선순위를 가지게 하도록 하는 운영방식을 한국의 연예 기획사들이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 볼 수 있죠.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관심이 비교적 높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팬덤의 규모가 상당했으나 그 후 일본 대중문화가 침체기를 겪으면서 예전과 같은 팬덤 활동은 줄어든 편. 그나마 쟈니스 대표 아이돌인 아라시가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한국 내의 일본 대중문화 팬덤의 중심 역할을 하는 중입니다.

 

 


 

4. 쟈니 사장의 사망 원인은?

 

 

일본 대형 연예 기획사 쟈니스 사무소의 쟈니 기타가와 사장이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리콘, 스포니치 아넥스 등 일본 매체는 쟈니스 사무소의 쟈니 기타가와 사장이 지난 9일 오후 4시 47분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쟈니 키타가와는 지난달 18일 자택에서 쓰러졌어요. 병명은 해리성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 출혈. 결국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쟈니스 사무소 측은 서면을 통해 이 사실을 각 매체에 알렸습니다. 장례식은 쟈니스 소속 연예인들만 참석하는 가족장을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쟈니 기타가와 사장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다 병세가 호전돼 일반 병동으로 옮겨 쟈니스 소속 스타들이 면회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쟈니스 사무소 측은 쟈니 기타가와 사장의 병세가 일시적으로 회복했던 데 대해 "다시 한번 (쟈니 기타가와 사장의) 쟈니스 탤런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유대의 힘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쟈니스 사무소 측은 "쟈니 기타가와 사장이 우리에게 계속 말하고자 한 것은 자신의 뜻을 이어받아줄 탤런트를 끊임없이 육성, 그 탤런트와 직원들이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여러분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 쟈니스그룹의 변함없는 생각이라는 것이다"면서 "세상은 언제까지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평화롭고 희망찬 미래가 이어지길 바랐다"고 고인의 뜻을 전했습니다.

 

평소 각별한 배려에 받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사 대표 이사 사장 쟈니 키타가와 대해서는보고가 있습니다.

 

2019 년 7 월 9 일 오후 4시 47 분, 도내 병원에 일어나서, 쟈니 키타가와는 영면했습니다.

 

향년 87 세, 사인은 해리 성 뇌동맥 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 하 출혈입니다.

 

쟈니는 자신이 키운 인재들을 응원 해 주시는 팬 여러분과 지원 해 관계자들에게 지원 함으로서, 자신의 창작 활동이 성립 일상 탤런트 육성에 힘 쓰는 수있어 있는지에 평소보다 매우 감사 드리고있었습니다. 쟈니 대신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9 년 6 월 18 일 오전 11시 30 분경 집에 일어나서 몸의 이변을 호소 해 병원에 가려고했는데 의식을 잃고 구급차되었습니다. 반송 후 중환자 실에 일어나서 열심히 응급 조치를 실시 주신하여 일반 병동으로 옮겨 질 수 있었다 때문에 병원의 협력도 쟈니는 자신에게 아이 같은 존재도 있습니다 탤런트 나 Jr. (주니어)과의 면회를 완수 할 수있었습니다. 쟈니가 탤런트들과 보낸 병원에서의 일상은 둘도없는 시간이되었습니다. 신구 다양한 음악이 흐르는 병실에 일어나서, 고위 탤런트에서 Jr. 까지이 같은 공간에서 쟈니와의 추억을 이야기를 나누는 흐뭇 화기애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잠시도 쟈니가 외로워하지 않도록 작업 틈틈이 탤런트들은 바뀌어 서 바뀌는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쟈니 좋아하는 음식을 모두가 화려하게 먹는 것이 일과가되어 그 광경과 냄새에서 마치 연습장에있는 것 같은 감각을 기억 모두 그리운 기억이 되살아했습니다. 때 위험한 상태에 빠지기도했지만, 탤런트들이 호소 몸을 비비다 때마다 위기를 벗어날 수있었습니다. 탤런트들과 지출에서 쟈니의 병세가 일시적으로 회복하는 기적적인 사건을 반복 목격하고 고쳐서 쟈니 탤런트 대한 양친으로서의 깊은 애정과 아이들과의 인연의 힘을 느낌 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사랑에 감싸면서 2019년 7월 9일 오후 4시 47분 쟈니 키타가와는 인생의 막을 내 렸습니다.

 

쟈니는 병에 쓰러지는 직전까지 극장과 스튜디오에 향하는 나날을 보내고있었습니다. 특히 공연을 앞둔 Jr. 회사에 연일 열심히지도하는 모습은 쟈니의 프로듀서 삶 자체이며, 바로 평생 프로듀서로서의 인생을 완수했습니다.

 

1962년 쟈니스 사무소 설립 이래 쟈니는 한결같이 엔터테인먼트의 창출에 힘써 왔습니다. 쟈니 엔터테인먼트에 빼놓을 수없는 것은 탤런트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탤런트들을 낳고 키워 나가고 있었지만, 일관하고 있었던 것은 탤런트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기원했습니다. 현재는 많은 분들이지지 해 주시는 것으로 창업 당시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많은 인재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해주고있는 것에 늘 감사하고있었습니다.

 

쟈니가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계속 말하고 것은 자신의 의지를 이어주는 인재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인재와 직원들이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전세계의 여러분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쟈니즈 그룹으로 결코 변하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언제 까지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있는 평화 롭고 희망찬 미래로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앞으로 탤런트와 직원들이 그 뜻을 이어 받아 각자가 역할을 전세계에 쟈니의 소원이 닿을 수 있도록 탤런트과 직원이 하나가되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때문에 아무쪼록지도 賜れ하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팬 여러분,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 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이 입원 기간 동안 일어나서, 진력 주셨습니다 병원 관계자 여러분 비롯해 지원 주셨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례 · 고별식 대해서는 쟈니의 자녀입니다 탤런트들과 Jr. 만에 거행 가족 장으로하겠습니다 때문에, 아무쪼록 이해 받도록 싶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신세를졌습니다 여러분 께 작별 줄 기회를 제공 할 예정으로하고 있으므로, 결정 되는대로 안내해드립니다.

 

매우 황송 있습니다 만, 개별 문의 취재에 대해서는 삼가 주시도록 아무쪼록 이해와 협력의 정도, 잘 부탁드립니다.

 

2019년 7월 9일

 

주식회사 쟈니스 사무소

 



쟈니 사장에 대해 정리 해 보았습니다. 

지금도 각종 SNS에서는 쟈니스 (구 쟈니스 소속)의 아티스트들의 추모글들이, 팬들의 추모글들이 막 올라오고 있는데요.

시대의 변화 라는 거는 당연한 것이고 바뀌는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조금 쓸쓸하네요.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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